비합리적 신념
Ellis(1994)의 공헌은 인간을 부적응으로 몰아가는 비합리적 신념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REBT에 따르면 인간이 심리적 부적응과 장애를 나타내는 주요한 원인은 비합리적 신념이다. 비합리적 신념은 자신,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와 요구를 의미한다. 이러한 비합리적 신념은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절대적이고 완벽주의적인 당위적 요구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에 따르면 비합리적 신념은 자신, 타인, 세상에 대한 당위적 사고의 세 가지 범주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자신에 대한 당위적 요구로서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현실적으로 충족되기 어려운 과도한 기대와 요구를 부과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나는 반드시 탁월하게 일을 수행해내야 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무능하고 무가치하며 고통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와 같은 신념이다. 이러한 비합리적 신념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자꾸 미루거나 불만족스러워하고 불안과 우울을 경험하게 되며 자기 비난과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거나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신념은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비합리적 신념이다. 또한 자신에게 부과한 당위적 요구에 의해서 부적응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이러한 신념은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자기 패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념은 대부분 흑백논리와 과잉일반화의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둘째는 타인에 대한 당위적 요구이다. 이것은 개인이 타인에게 지니는 과도한 기대와 요구로서 타인이 그러한 기대에 따르도록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신념을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예는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친절하고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진정한 친구라면 항상 내 편을 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존중할 가치가 없는 나쁜 사람들이며 징벌받아 마땅하다."와 같은 신념이다. 이런 과도한 기대와 신념은 필연적으로 실망, 좌절, 배신과 같은 마음의 상처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 분노, 적개심, 질투, 폭력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신념은 개인의 특정한 행동보다 개인의 인격 전체를 싸잡아 부정적으로 매도하게 만든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로 타인에게 부당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신념은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합리적 신념은 분노, 증오, 불화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경우에는 전쟁이나 민족 말살과 같은 인류의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세상에 대한 당위적 요구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정치적 체제뿐만 아니라 자연 세계에 대한 비현실적인 과도한 기대를 의미한다. 예컨대 "우리 사회는 항상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안전하고 편안하며 즐거운 곳이어야 한다." "세상은 항상 반드시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야 하며 나의 노력에 즉각적인 보상을 주어야 한다." "자연 세계는 결코 우리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혐오스럽고 무서운 참을 수 없는 곳이다."와 같은 신념은 뜻한다. 이러한 신념은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분노와 공포, 비관적이고 소극적인 행동, 우울과 자기연민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신념은 비현실적이다. 이러한 신념은 좌절에 대한 인내력을 고갈시키고 우울과 무기력감을 느끼게 하며 일에 대한 의욕을 저하시켜 자연 행동을 유발한다. 이러한 신념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당위적 요구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에 대해 분노를 느끼거나 원망과 저주를 할 수도 있다.
당위적 요구는 실현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좌절을 초래하여 건강하지 못한 부정적 감정과 행동을 유발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부적응적인 것으로 몰아가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비합리적 신념은 우리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게 비현실적인 것을 과도하게 요구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고 불행한 것으로 몰아가게 된다. Ellis에 따르면 이러한 절대적이고 당위적인 신념이야말로 인간이 겪는 정서적 문제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Karen Horney 역시 '당위적 요구의 폭정'을 신경증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당위적 요구는 인간의 선천적 비합리성에 기인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주입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비합리적 신념을 지니고 있다. 다만 이러한 신념의 현실성과 합리성을 재평가하지 않은 채 행동하거나 스스로에게 계속 주입함으로써 비합리적인 신념이 지속되거나 강화될 수 있다. 비합리적 신념의 변화는 가능하지만 쉽지 않기 때문에 꾸준한 노력과 연습을 통해서만 변화될 수 있다. Ellis는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당위적 요구를 지니고 태어나며 길러진다. 따라서 오직 고된 노력을 통해서만 이러한 당위적 요구를 건강한 소망으로 바꿀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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