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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정서행동치료 - Ellis의 생애

by 코코 라이프 2022. 9. 29.
합리적 정서행동치료의 개요

 

 앨버트 엘리스에 의해 제창된 합리적 정서행동치료는 인지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최초의 치료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을 단순히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기계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극단적인 행동치료자들의 견해와 달리, Ellis는 외부 자극에 대한 개인의 반응을 매개하는 신념 체계, 즉 해석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Ellis는 치료 장면에서 내담자의 신념 체계를 합리적인 것으로 바꿈으로써 내담자의 정서와 행동을 적응적으로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을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합리적 정서행동치료는 그 명칭이 시사하듯이 인간의 세 가지 심리영역인 인지, 정서, 행동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인지가 핵심이 되어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합리적인 이성에 근거하여 부적응적인 정서와 행동이 개선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합리적 신념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치료법을 제시하고 있다.

 Ellis는 인간의 고통은 외부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생각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기본가정에 근거하여 부적응 행동을 이해하는 간결하고 명료한 개념체계인 ABC 이론을 제시하였다. 선행사건(A)에 대한 신념(B)이 결과적 감정과 행동(C)을 유발한다는 설명체계를 통해서 자극과 반응을 매개하는 인지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아울러 부적응적인 삶을 초래하는 비합리적 신념의 구체적인 기준과 내용을 명쾌하게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신념을 합리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다양한 치료기법을 제시하고 있다.

 REBT의 핵심은 내담자의 비합리적 신념을 합리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방법이 논박이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이성적 판단에 근거하여 자신의 신념이 부적응을 초래하는 비합리적인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돕는다. 이러한 치료 과정은 ABCDEF 모델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ABC가 부적응 행동을 설명하는 모델이라면 DEF는 치료적 과정을 보여주는 모델이다. ABC 분석을 통해 파악된 비합리적 신념(B)은 논박(D)을 통해서 효율적인 것(E)으로 변화되고 그 결과 새로운 감정과 행동(F)이 나타나게 된다. REBT는 내담자의 삶을 부적응적인 것으로 몰아가는 신념 체계에 대한 도전과 철학적 논의를 통해서 좀 더 유연하고 합리적인 신념 체계로의 변화를 촉진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담자는 인생관의 심오한 철학적 변화를 통해 삶 전반의 긍정적 변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REBT는 현재 가장 널리 적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인지행동치료 중 하나이다. REBT의 가장 커다란 공헌은 엄격한 행동치료가 주류를 이루던 1950년대에 인지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구체적인 개입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행동치료가 지평을 넓혀 인지행동치료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Albert Ellis 자신은 불우한 성장 과정 속에서 많은 역경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REBT에서 제안하고 있듯이 이성의 합리성에 근거한 적극적인 문제해결자의 삶을 보여주었다.

 

 

Ellis의 생애와 REBT의 발전 과정

 

1) Ellis의 성장 과정과 교육 배경

 Albert Ellis의 인생은 어린 시절의 불행한 경험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위대한 심리치료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1913년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릴 때 뉴욕으로 이주해서 일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살았다. Ellis는 출장이 잦았던 아버지와 집안일을 등한시하던 어머니 밑에서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어린 시절에 Ellis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Ellis는 5세 때 편도선염이 악화하여 응급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이 수술 후에는 급성신장염이 발병하였다. 이 신장염 때문에 Ellis는 5~7세 사이에 8번 정도 병원에 입원해야 했으며, 10개월 동안 입원했던 적도 있었다. 이 기간에도 어머니의 따뜻한 돌봄이나 아버지의 병문안은 거의 없었으며 찾아오는 사람 한 명 없이 몇 주를 홀로 보낸 적도 많았다고 한다. 병이 회복되는 동안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스포츠 활동이나 외부 활동이 많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집안에서 지내면서 지적인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Ellis가 12세가 되었을 때 부모는 이혼했다. 그 후 아버지는 재정적 지원은커녕 자녀들에게 나타나지도 않았으며, 어머니는 자신의 관심사와 쾌락 추구에 몰두한 나머지 집안일과 자녀 양육에 소홀했다.

 Ellis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극도로 부끄럼을 타는 내성적인 아이로 묘사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가능하면 남 앞에 나서는 것을 회피했으며, 좋아하는 소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반에서 시를 발표하거나 상을 받기 위해 연단에 나가야 할 때는 불안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땀을 흘리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곤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아동기의 시련에 대해서 Ellis는 자신의 강한 독립성과 자율성으로 이겨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아침에 자명종이 울리면 스스로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으며, 자신은 물론 어린 두 동생까지 돌보았고, 사회 공포증 증상을 제외하고는 성적도 우수하고 학교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또한 신체적인 문제를 겪으면서 건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거친 운동은 못했지만 지적인 흥미나 관심은 증가하기 시작했다.

 Ellis는 아동기의 어려웠던 환경에 의해 도전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선천적인 능력들이 발휘되었으며 문제 해결자로서의 역량을 갖게 되었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는 자신이 정서적 비참함에 압도당하기보다는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타고난 지적 능력이 더욱 잘 발휘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Ellis는 아동기의 사건들이 인격체로 형성해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Ellis는 자신이 창안한 REBT의 인간관과 마찬가지로, 자기 삶은 아동기 경험에 의해 짓눌리기보다 역경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즉 아동기의 시련 자체로 인해 자신이 더욱 합리적인 인간이 된 것은 아니며, 다만 자신의 지적이고 합리적인 기질이 더욱 잘 발현되도록 도왔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선천적 기질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Ellis의 이론에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는데, Ellis는 REBT에서 각 개인은 합리적 사고를 위한 역량을 다양하게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라고 보고 있다.

 Ellis는 12세 때 유명한 작가나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하였으며 16세에 이미 Epictetus, Spinoza, Kant, Russell의 저서를 읽었다. 그러나 가난했던 Ellis는 생계유지 수단을 찾기 위해 뉴욕시립대의 경영 및 도시행정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일단 회계사가 되어서 충분한 생활자금을 마련한 후에 소설가가 되고자 했던 그의 계획은 경제공황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20세 초반에 Ellis는 자신의 가장 큰 심리적 어려움이었던 '대중 앞에서 연설할 때의 공포'와 '여성에게 다가가는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이때의 시도 경험이 나중에 REBT의 치료기법을 발전시키는 데 영향을 주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브롱크스 식물원에서의 '위험 무릅쓰기 연습'이다. Ellis는 브롱크스 식물원에서 한 달 동안 100명의 여성에게 다가가서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중 1명의 여성만이 데이트에 동의하였으나 결국 그녀도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데이트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Ellis는 사회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행동 변화의 중요한 특징, 즉 초기에는 두려운 상황에 도전하기가 매우 힘들지만 반복적으로 자신을 던지고 노출시킴으로써 오랜 기간 지속된 자기 파괴적 정서와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성인기 초기에 Ellis는 성공적인 소설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부끄러움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에서는 성공을 거두었고, 자신의 관심을 당시 사람들이 소홀히 생각하던 성과 사랑, 가정의 문제로 돌리기 시작했다. Ellis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성적인 경험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조언을 통해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일을 전문적인 직업으로 선택하기로 결심하고 임상심리학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한 후 Ellis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를 '여대생의 사랑에 관한 정서'로 정하고 모든 연구 자료들을 수집하여 논문발표까지 하였으나 몇 명의 교수들이 성에 관한 연구가 대학의 이미지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서 논문 통과에 반대하였다. 결국 Ellis는 논문 주제를 인성 검사에 관한 것으로 바꾸어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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