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격 유형
융은 개인의 다양한 성격적 특성을 태도와 기능의 차이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개인이 내면적 세계 또는 외부적 세계에 대해서 관심과 에너지를 투여하는 방향성에 따라 외향성과 내향성의 두 가지 태도로 구분했다. 외향성은 외부 세계에 관심을 지니는 객관적 태도이며, 내향성은 내면세계에 관심을 두는 주관적 태도이다.
두 가지 태도는 서로 배타적으로 번갈아 나타날 수 있지만 의식에 공존할 수는 없다. 개인은 상황에 따라 외향적일 수도 내향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어느 한쪽의 태도가 우세하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의 문제인데, 개인은 전적으로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인 경우는 없으며 두 태도를 모두 가지고 있다. 또 의식에서는 외향적이라 할지라도 무의식에서는 내향적이어서 구분이 더 모호해지기도 한다. 꿈이 보상적 기능을 한다는 융의 이론에 따르면, 외향적인 사람은 꿈에서 내향적인 모습을 나타낼 수 있으며 내향적인 사람은 그 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성격을 구성하는 기능에는 사고, 감정, 감각, 직관의 네 가지가 있다. 사고는 사물을 이해하고자 하는 지적 기능으로서 여러 관념을 연결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감정은 평가의 기능을 말하며 어떤 관념이 긍정적 감정 또는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지에 따라 그 관념을 받아들일 것인지 물리칠 것인지를 결정한다. 사고와 감정은 모두 이성에 의한 판단행위가 개입되기 때문에 '합리적' 기능이라고 지칭된다.
감각은 감각기관의 자극에 의해 생기는 모든 의식적 경험을 포함하고 있다. 직관은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감각과 비슷하다. 그러나 감각은 자극의 근원이 분명하지만 직관은 갑자기 나타나며 그 근원과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차이를 지닌다. 감각과 직관은 이성과 판단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비합리적' 기능이라고 지칭된다. 비합리적이라 함은 이성에 반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과 관계가 없음을 뜻하며 무이성적 또는 무비판적이라는 의미이다. 감각과 직관은 방향이나 지향성이 없으며 합리적 기능과 달리 목표가 없다. 감각은 무엇이 존재하는지를 알려주고, 직관은 그것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려준다.
두 가지의 태도와 네 가지의 기능을 결합하면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의 성격유형이 나타날 수 있다.
(1) 외향적 사고형은 객관적 사고가 특징적이며 객관적 세계에 관해 최대한 많이 배우고자 하는 과학자의 특성을 지닌다.
(2) 내향적 사고형은 생각이 내면으로 향해져 있으며 자기 존재의 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철학자나 실존심리학자가 그 표본이다.
(3) 외향적 감정형은 생각보다 감정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감정의 변화가 심하고 잘난 척하며 감정적이고 사치스럽다.
(4) 내향적 감정형은 자신의 감정을 과장해서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감추며 말수가 적고 무관심한 듯하여 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5) 외향적 감각형은 외부 세계의 사실들을 모으는 일에 흥미를 지니며 현실주의적이고 실제적이며 앞일을 생각하기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긴다.
(6) 내향적 감각형은 외부 세계와 거리를 두고 자신의 내면적 감각에 몰두하며 예술을 통해 표현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낀다.
(7) 외향적 직관형은 외부 세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지만 한 가지 일을 꾸준하게 추구하지 못하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경솔함과 불안함이 특징이다.
(8) 내향적 직관형은 내면세계에서 새로운 심상과 통찰을 추구하며 타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괴짜로 보일 수 있는데 예술가, 몽상가, 예언가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융의 성격 유형론은 MBTI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2) 성격 발달
융은 인간의 발달과정을 네 가지 단계, 즉 아동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구분했다. 그는 성격 발달 자체보다 무의식의 변화과정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정교한 설명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아동기는 출생에서 시작하여 사춘기 또는 성적 성숙기까지 계속된다. 이 시기의 아동은 근본적으로 본능적 에너지에 의해 움직인다. 부모의 역할은 아동의 에너지의 방향을 잡아주어 아동이 혼란스럽거나 무질서하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단계의 초기에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아동은 자신을 1인칭으로 말하기 시작하며, 학교에 들어가면서 부모의 세계, 즉 심리적 자궁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청년기는 사춘기에 일어나는 생리적 변화로부터 시작한다. 생리적 변화는 정신적 측면에서도 혁명적 변화를 유발하게 되는데, 융은 이 시기를 '정신적 탄생기'라고 불렀다. 청년기에는 사회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다양한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적응방식을 잘 습득하게 되면 큰 어려움을 겪지 않지만, 아동기의 환상에 집착하여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이 단계에서 생기는 정신적 문제는 성적 욕구에 의한 심리적 혼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과민성과 불안정에서 생기는 열등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청년기 문제의 공통적 특징은 아이 원형, 즉 어른이 되기보다 아이로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경향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중년기는 약 35세부터 40대 후반에 해당하는 시기로서 융은 이 시기의 변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융이 중년기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자신이 이 시기에 정신적 위기를 겪었으며, 자신의 내면을 재검토하고 꿈과 창조적 작업을 통해 무의식을 탐색하였던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융의 환자 중 대다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기의 사람들로서 삶의 의미와 관련된 물음들을 지니고 있었다. 이전에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고 인생이 공허하며 무의미한 것처럼 생각되어 우울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중년기에는 특유의 적응문제가 발생하는데, 지금까지 외부 세계에 대한 적응에 사용되었던 에너지가 새로운 정신적 가치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즉 젊은 시절의 외향적이고 물질주의적 관심에서 내향적이고 정신적인 관심으로 변화되거나 확대된다. 개인이 자신의 직업과 가정에서 안정된 자리를 잡아갈수록 인생의 무의미함과 상실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시기는 행동을 통한 외부적 활동보다 내면적 사색과 명상을 통해서 자기를 실현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인 것이다.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융에게 있어서 노년기는 삶을 반성하고 지혜를 키우는 시기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신의 삶의 경험을 이해하고 그러한 이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이끌어내는 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노년기에는 내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 융은 내세를 여러 종교와 신화의 주된 주제로서 무의식적 기반을 지닌 것으로 여겼다. 인간의 심리적 발달은 노년기에도 결코 끝나지 않으며 나이에 상관없이 계속된다는 것이 융의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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